“중국이 엔비디아까지 막았다”…트럼프 방중 중 벌어진 반전, AI 반도체 전쟁 더 거세지나
미국과 중국의 반도체 패권 경쟁이 이제는 첨단 AI 칩을 넘어 게임용 그래픽카드 시장까지 번지고 있다. 중국 정부가 엔비디아의 중국 전용 저사양 칩 수입까지 차단한 사실이 알려지면서,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의 긴장감이 다시 커지는 분위기다.
20일(현지시간) 파이낸셜타임스(FT)에 따르면 중국은 최근 엔비디아의 게임용 칩인 ‘RTX 5090D V2’를 세관 통관 금지 품목에 포함했다.
특히 이번 조치는 도널드 트럼프 미국 대통령의 방중 기간과 맞물려 이뤄졌다는 점에서 시장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 미국은 중국에 대한 반도체 수출을 일부 완화하며 관계 개선 가능성을 열어두는 듯했지만, 중국은 오히려 자국 기술 독립 노선을 더 강하게 밀어붙이는 모습이기 때문이다.
게임용으로 만든 칩인데…중국 AI 기업들이 몰렸다
이번에 문제가 된 RTX 5090D V2는 원래 중국 시장만을 위해 따로 설계된 제품이다.
엔비디아는 미국 정부의 대중국 반도체 수출 규제를 피하기 위해 성능을 낮춘 중국 전용 칩을 제작해 왔다. RTX 5090D V2 역시 그런 제품 가운데 하나였다.
당초 이 칩은 중국 게이머와 3D 그래픽·애니메이션 작업용 수요를 겨냥해 개발됐다. 하지만 실제 시장에서는 상황이 달랐다.
미국의 고성능 AI 반도체 수출 제한으로 H100이나 H200 같은 첨단 AI 칩 확보가 어려워지자, 중국 AI 개발업체들이 상대적으로 성능 제한이 덜한 게임용 GPU를 AI 학습 용도로 활용하기 시작한 것이다.
업계에서는 이미 오래전부터 “게임용 GPU와 AI용 GPU의 경계가 흐려지고 있다”는 분석이 나왔다. 실제로 생성형 AI 붐 이후 고성능 그래픽카드는 게임보다 AI 연산 시장에서 훨씬 더 큰 가치를 갖게 됐다.
결국 중국 정부는 이마저도 통제 대상으로 보기 시작한 셈이다.
중국의 진짜 목표는 ‘엔비디아 의존 끊기’
시장에서는 이번 조치의 핵심 이유를 중국의 ‘반도체 자립 전략’으로 보고 있다.
현재 중국은 화웨이와 캄브리콘 같은 자국 반도체 기업을 전폭 지원하며 미국 기술 의존도를 줄이는 데 국가 역량을 집중하고 있다.
즉 단순히 미국 제재에 대응하는 수준을 넘어, 장기적으로는 엔비디아 같은 해외 기업 없이도 AI 산업 생태계를 구축하겠다는 목표다.
실제로 최근 중국 정부는 공공기관과 국영기업을 중심으로 중국산 AI 반도체 사용을 확대하는 정책을 강하게 밀어붙이고 있다.
이번 RTX 5090D V2 차단 역시 “조금이라도 엔비디아 의존도를 줄이겠다”는 전략의 연장선이라는 해석이 나온다.
업계 관계자들은 “중국은 이제 단순 수입 대체를 넘어 자국 기술 생태계 완성을 국가 안보 수준 과제로 보고 있다”고 분석한다.
트럼프는 수출 기대했지만…결과는 정반대
이번 상황은 도널드 트럼프 대통령 입장에서도 예상과 다른 흐름으로 평가된다.
트럼프 대통령은 방중을 계기로 미국 기업들의 중국 수출 확대 가능성을 기대했던 것으로 알려졌다. 특히 엔비디아 같은 미국 대표 AI 기업들의 중국 시장 재진입 여부가 주요 관심사였다.
실제로 트럼프 행정부는 지난해 말 엔비디아의 H200 칩 중국 수출을 일부 허용하기도 했다.
H200은 엔비디아의 대표 AI 칩인 H100의 업그레이드 버전으로, 생성형 AI와 대규모 데이터센터에 사용되는 핵심 제품이다.
하지만 중국 정부는 오히려 자국 기업들의 구매 자체를 제한하는 방향으로 움직였다.
트럼프 대통령 역시 이에 대해 “중국은 결국 자체 기술을 원하고 있다”고 언급했다.
이는 미·중 기술 갈등이 단순 무역 문제를 넘어 국가 전략 산업 경쟁으로 완전히 굳어졌다는 현실을 보여주는 장면이라는 평가도 나온다.
젠슨 황도 “기대 없다”…엔비디아의 현실 인정
엔비디아 역시 중국 시장 상황이 이전과 완전히 달라졌다는 점을 인정하는 분위기다.
젠슨 황 엔비디아 CEO는 트럼프 대통령 방중에 동행하며 중국 시장 공략 의지를 드러냈지만, 결과적으로 별다른 성과 없이 돌아가게 됐다.
그는 CNBC 인터뷰에서 H200 칩의 중국 수출 전망에 대해 “아무런 기대도 하지 않는다”고 말했다.
특히 황 CEO는 “우리가 중국에서 철수했기 때문에 현지 반도체 기업 생태계가 잘 돌아가고 있다”고 언급하며, 중국 기술 성장 속도를 직접 인정하기도 했다.
이는 과거 엔비디아가 중국 시장을 압도적으로 장악했던 분위기와는 상당히 달라진 모습이다.
업계에서는 미국 제재가 오히려 중국 반도체 자립 속도를 더 빠르게 만들었다는 분석도 나온다.
화웨이 반사이익 커진다…AI 칩 판매 60% 증가 전망
현재 가장 큰 수혜 기업으로는 화웨이가 꼽힌다.
중국 기업들이 엔비디아 대신 자국산 제품 채택을 확대하면서 화웨이의 AI 반도체 판매는 올해 최소 60% 증가할 것으로 전망된다.
화웨이는 최근 AI 데이터센터용 반도체와 자체 AI 서버 시장에서 빠르게 점유율을 확대하고 있다.
특히 미국 제재 이후에도 예상보다 빠른 기술 회복력을 보여주면서 중국 내부에서는 사실상 ‘반도체 자립 상징’처럼 여겨지는 분위기다.
여기에 캄브리콘 같은 중국 AI 반도체 스타트업들도 성장세를 이어가고 있다.
“2030년 중국 AI 반도체 시장 100조 원”…판이 바뀐다
모건스탠리는 오는 2030년 중국 AI 반도체 시장 규모가 약 670억 달러, 우리 돈 약 100조 원 수준까지 성장할 것으로 전망했다.
더 주목되는 건 공급 구조다.
보고서는 해당 시장의 86%를 중국 업체들이 차지할 것으로 예상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중국 AI 산업은 엔비디아 의존도가 절대적이었다. 하지만 미국의 지속적인 수출 규제와 중국 정부의 대규모 투자 정책이 맞물리면서 시장 판도가 급격히 바뀌고 있는 것이다.
전문가들은 앞으로 글로벌 AI 반도체 시장이 미국·중국 중심으로 완전히 이원화될 가능성이 크다고 보고 있다.
즉 미국은 엔비디아 중심 생태계를 강화하고, 중국은 화웨이 중심 독자 생태계를 구축하는 방향으로 흘러갈 수 있다는 분석이다.
AI 패권 경쟁, 이제는 ‘기술 냉전’ 수준
이번 엔비디아 칩 수입 차단은 단순한 제품 규제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는 평가가 나온다.
과거 미·중 갈등이 관세와 무역 중심이었다면, 이제는 AI와 반도체를 둘러싼 ‘기술 냉전’ 단계로 넘어갔다는 것이다.
특히 AI는 군사·산업·안보와 직결되는 핵심 기술로 여겨지면서 각국의 전략 경쟁도 훨씬 거칠어지고 있다.
업계에서는 앞으로 미국의 추가 수출 통제와 중국의 자국 기술 보호 정책이 반복될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결국 글로벌 반도체 기업들도 단순 기술 경쟁을 넘어, 어느 국가 블록에 더 깊이 연결될 것인지 선택을 강요받는 시대에 들어섰다는 분석이 나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