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업

“K무비 살 길은 AI?”…제작비 폭등에 한국 영화계, 생존 위해 인공지능 택했다

전 세계를 사로잡은 K-콘텐츠 열풍 뒤에서 한국 영화 산업은 지금 깊은 생존 위기에 빠져 있다. 코로나19 이후 무너진 극장 시장, 급등한 제작비, OTT 중심으로 바뀐 소비 환경이 동시에 몰아치면서 영화계는 새로운 돌파구를 찾는 분위기다. 그리고 그 중심에 인공지능(AI)이 떠오르고 있다.

미국 CNN은 26일(현지시간) 심층 보도를 통해 한국 영화 산업이 재정 위기를 극복하기 위해 AI 도입에 속도를 내고 있다고 집중 조명했다. 한때 세계 영화계의 성공 모델로 평가받던 한국 영화 산업이 이제는 AI를 생존 전략으로 받아들이고 있다는 분석이다.

실제로 최근 한국 영화계 상황은 예상보다 훨씬 심각하다는 평가가 많다.

한국영화진흥위원회(KOFIC)에 따르면 제작비 30억 원 이상의 중대형 한국 영화는 과거 연간 40~50편 수준이었지만 지난해에는 단 20편까지 줄었다. 코로나19 이후 극장 관객 수가 완전히 회복되지 못한 가운데 OTT 플랫폼 확산으로 관람 문화 자체가 바뀌었기 때문이다.

극장 매출 역시 코로나 이전 대비 약 45% 감소한 상태다. 화려한 K-콘텐츠 글로벌 흥행과 달리 정작 국내 영화 제작 현장은 수익성 악화에 시달리고 있다는 의미다.

특히 제작비 상승 문제가 치명적이라는 분석이 나온다.

톱배우 출연료와 촬영 인건비, 특수효과(CG) 비용 등이 급격히 오르면서 영화 한 편 제작 부담이 과거와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커졌다는 것이다. 글로벌 OTT 경쟁이 심해지면서 콘텐츠 규모는 커졌지만, 실제 제작사가 가져가는 이익은 기대만큼 늘지 못했다는 지적도 나온다.

이런 상황 속에서 대형 제작사들은 AI를 새로운 해법으로 보기 시작했다.

국내 최대 엔터테인먼트 기업인 CJ ENM 역시 AI 기반 제작 시스템 도입에 적극 나서고 있다. 백현정 CJ ENM 콘텐츠혁신담당은 CNN 인터뷰에서 “글로벌 시장은 확대됐지만 제작비 폭등으로 수익성이 악화됐다”며 AI 도입이 선택이 아닌 필수가 된 배경을 설명했다.

AI 도입 효과는 실제 제작 현장에서 빠르게 나타나고 있다는 평가다.

지난해 공개된 한국 최초 AI 장편 영화 ‘서쪽으로 달려라’는 신화 속 괴물과 폭발 장면 등 상당수 특수효과 작업에 AI를 활용했다. 제작사 측에 따르면 기존 CGI 작업 대비 제작 속도는 10배 가까이 빨라졌고 비용은 절반 수준으로 줄었다.

최근 CJ ENM이 구글 클라우드 코리아와 협력해 선보인 공포 스릴러 ‘더 하우스(The House)’도 업계 관심을 끌었다.

60분 분량 작품이지만 제작비는 약 5억 원 수준에 불과했다. 배우들은 그린스크린 앞에서 단 4일만 촬영했고, 이후 상당수 장면이 AI 기술로 생성됐다. 기존 영화 제작 방식과 비교하면 제작 구조 자체가 달라진 셈이다.

업계에서는 이런 흐름이 앞으로 영화 산업 구조를 크게 바꿀 수 있다고 보고 있다.

과거 대규모 자본과 인력이 필요했던 영상 제작이 AI 덕분에 훨씬 저렴하고 빠르게 가능해질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중소 제작사나 독립영화계에서는 AI가 새로운 기회가 될 수 있다는 기대감도 나온다.

하지만 동시에 우려 역시 만만치 않다.

한국 영화계를 대표하는 거장 감독들은 AI 중심 제작 흐름에 대해 경계심을 드러내고 있다. 박찬욱 감독과 봉준호 감독 등은 인간의 감정과 창의성이 영화에서 가장 중요한 요소인데, AI가 지나치게 개입할 경우 작품의 인간성이 약화될 수 있다고 우려하는 것으로 알려졌다.

실제로 영화계 내부에서도 의견이 갈린다.

일부는 AI를 “카메라와 편집 기술 발전의 연장선”으로 보지만, 다른 한편에서는 “창작 자체를 대체할 위험”이 있다고 본다. 특히 배우·스태프 일자리 축소 문제와 저작권 논란도 계속 제기되는 상황이다.

AI가 기존 영화 데이터를 학습해 장면을 생성하는 과정에서 원작자 권리 문제는 여전히 명확하게 정리되지 않은 상태다. 할리우드에서도 AI 관련 저작권과 배우 초상권 문제가 주요 갈등 요소로 떠오른 바 있다.

그럼에도 현실적으로 영화 산업이 AI 흐름을 거스를 가능성은 크지 않다는 전망이 우세하다.

글로벌 콘텐츠 시장 경쟁이 치열해지는 상황에서 제작비 부담을 줄이고 생산 속도를 높이기 위해 AI 활용은 점점 확대될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특히 OTT 시대에는 콘텐츠 공급 속도 자체가 경쟁력이 되고 있기 때문이다.

결국 핵심은 AI를 얼마나 ‘창작 보조 도구’로 활용하느냐에 달려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인간 감독과 작가, 배우의 감성과 AI 기술이 어떤 균형을 이루느냐가 앞으로 영화 산업 방향을 결정할 가능성이 크다는 의미다.

K-콘텐츠가 세계 시장에서 영향력을 유지하기 위해선 새로운 제작 혁신이 필요한 상황이다. 그리고 지금 한국 영화계는 그 해답 중 하나로 AI를 선택하고 있다. 다만 그 과정에서 영화의 본질인 인간적 감성과 창의성을 어디까지 지켜낼 수 있을지는 앞으로 가장 큰 과제로 남게 될 전망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