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자본시장 새 역사 썼다…전자등록 증권자산 1경원 돌파, ‘코리아 리레이팅’ 신호탄 될까

국내 자본시장이 또 하나의 상징적인 이정표를 세웠다. 전자증권 제도 도입 이후 꾸준히 성장해온 전자등록 증권자산 규모가 처음으로 1경원을 넘어섰다. 단순한 숫자 이상의 의미를 가진 기록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반도체 슈퍼사이클에 따른 증시 호황과 정부의 자본시장 활성화 정책이 맞물리면서 한국 금융시장의 규모와 위상이 한 단계 올라섰다는 분석이다.

한국예탁결제원은 4일 기준 전자등록 관리자산 규모가 1경1065조원을 기록했다고 밝혔다. 전자등록 자산은 주식과 채권, 펀드, 파생결합증권 등 자본시장법상 대부분의 증권을 포함하는 지표로, 국내 자본시장의 전체 규모를 보여주는 대표적인 척도로 활용된다.

특히 이번 기록은 전자증권법 시행 이후 불과 몇 년 만에 이뤄졌다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전자증권법이 처음 시행된 2019년 9월 당시 전자등록 자산 규모는 약 4780조원 수준이었다. 이후 꾸준한 성장세를 이어오며 7년 만에 두 배 이상 증가했고, 마침내 1경원 시대에 진입했다.

이는 단순히 증권 숫자가 늘어난 결과가 아니다.

시장에서는 최근 몇 년간 한국 자본시장을 둘러싼 환경 변화가 결정적 역할을 했다고 분석한다. 무엇보다 가장 큰 배경은 반도체 중심의 증시 상승이다.

최근 AI 산업 확산으로 삼성전자와 SK하이닉스를 비롯한 국내 반도체 기업들의 가치가 크게 상승했다. 특히 AI 데이터센터와 고대역폭메모리(HBM) 수요 확대는 한국 반도체 기업들의 실적 기대감을 끌어올렸고, 이는 곧 증시 전반의 시가총액 증가로 이어졌다.

실제로 주식 자산 규모는 6622조원으로 전체 전자등록 자산 가운데 가장 큰 비중을 차지했다.

이어 채권이 2854조원, 집합투자증권(펀드)이 1288조원으로 뒤를 이었다. 이는 국내 투자자들의 자산 운용 방식이 다양해지고 있다는 점도 보여준다.

특히 눈에 띄는 부분은 펀드와 채권 시장의 성장이다.

과거 국내 투자 문화가 예금과 부동산 중심이었다면 최근에는 주식과 펀드, ETF 등 금융투자상품으로 자금이 이동하는 흐름이 뚜렷해지고 있다. 연금 투자 확대와 개인 투자자 증가도 자본시장 규모 확대에 영향을 미쳤다는 분석이다.

정부의 자본시장 선진화 정책 역시 중요한 역할을 했다.

최근 정부는 이른바 ‘코리아 디스카운트’ 해소를 목표로 기업 지배구조 개선과 주주환원 정책 강화, 자본시장 제도 개편을 추진해왔다. 시장에서는 이를 ‘코리아 리레이팅(Re-rating)’ 전략이라고 부른다.

리레이팅은 기업이나 시장의 가치 평가 기준이 높아지는 현상을 의미한다. 즉 한국 증시가 과거보다 더 높은 평가를 받을 수 있는 환경이 조성되고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최근 외국인 투자자들의 관심도 다시 높아지는 분위기다.

반도체와 AI 산업 경쟁력은 물론, 기업 가치 제고 정책이 이어지면서 한국 시장에 대한 재평가 움직임이 나타나고 있다. 과거 저평가 시장으로 분류되던 한국 증시가 점차 선진시장 수준으로 이동하고 있다는 평가도 나온다.

전자증권 제도 자체의 효과도 무시할 수 없다.

전자증권법 시행 이후 종이 증권은 사실상 사라졌고, 모든 증권이 전산 시스템을 통해 등록·관리되고 있다. 거래 효율성과 안정성이 높아졌고, 발행 기업과 투자자 모두 비용 절감 효과를 얻을 수 있게 됐다.

예탁결제원은 시스템 안정성 강화와 비상장기업 참여 확대, 신종 금융상품 등록 확대 등을 통해 전자등록 자산 성장을 뒷받침했다고 설명했다.

시장에서는 앞으로도 자산 규모 확대가 이어질 가능성이 높다고 보고 있다.

특히 AI 산업 성장과 반도체 슈퍼사이클, 연금시장 확대, ETF 시장 성장 등이 지속될 경우 자본시장 규모는 더욱 커질 수 있다는 전망이다.

다만 일각에서는 경계의 목소리도 나온다.

최근 증시 상승 상당 부분이 AI와 반도체에 집중돼 있다는 점에서 특정 산업 의존도가 높다는 지적이다. 만약 글로벌 경기 둔화나 기술주 조정이 발생할 경우 자산 규모 증가세도 영향을 받을 수 있다는 것이다.

그럼에도 이번 1경원 돌파는 한국 자본시장 역사에서 의미 있는 장면으로 평가받는다.

불과 수년 전만 해도 상상하기 어려웠던 규모에 도달했다는 점에서 한국 금융시장의 성장 속도를 보여주는 상징적 기록이라는 것이다.

전자등록 자산 1경원 시대 개막은 단순한 숫자 경쟁이 아니다. 한국 경제가 제조업 중심 성장 모델을 넘어 금융시장과 자본시장의 경쟁력까지 확대하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된다. 앞으로 이 흐름이 지속된다면 ‘코리아 디스카운트’가 아닌 ‘코리아 프리미엄’이 시장의 새로운 기준이 될 가능성도 점점 커지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