HD현대중공업, VLGC 수주 랠리 이어간다…LPG 운반선 슈퍼사이클 본격화되나
BW LPG 이어 BGN도 추가 발주…HD현대중공업, VLGC 시장 존재감 확대
HD현대중공업이 초대형 액화석유가스(LPG) 운반선(VLGC) 시장에서 잇따른 대형 수주를 따내며 글로벌 친환경 선박 시장의 핵심 플레이어로 부상하고 있다. 세계 최대 VLGC 선주사인 BW LPG의 대규모 발주에 이어 에너지 트레이딩 기업 BGN 인터내셔널까지 추가 주문에 나서면서 LPG 운반선 시장이 새로운 호황 국면에 진입하는 것 아니냐는 기대감도 커지고 있다.
해운업계에 따르면 BGN 인터내셔널은 최근 HD현대중공업과 9만3000㎥급 이중연료 추진 VLGC 2척에 대한 건조 계약을 체결했다. 선가는 공개되지 않았지만 업계에서는 최근 VLGC 신조선 가격 흐름을 고려할 때 상당한 규모의 계약으로 평가하고 있다.
이번 수주는 단순히 선박 2척을 추가 확보했다는 의미를 넘어선다. BGN은 불과 두 달 전인 올해 4월에도 HD현대중공업에 9만㎥급 이중연료 VLGC 4척을 발주한 바 있다. 당시 계약 규모는 약 6747억 원에 달했다. 짧은 기간 안에 다시 추가 발주를 결정했다는 점은 향후 LPG 운송 시장에 대한 선주들의 기대감이 그만큼 높다는 의미로 해석된다.
세계 최대 선주사도 움직였다…1조4000억 원 규모 초대형 계약
앞서 BW LPG 역시 지난달 말 HD현대중공업에 9만㎥급 VLGC 8척을 한꺼번에 발주했다. 계약 규모는 총 1조4161억 원으로 척당 가격만 약 1770억 원에 달한다.
세계 최대 VLGC 선대를 보유한 BW LPG가 이처럼 공격적인 투자를 결정한 것은 단순한 선대 확대보다는 노후 선박 교체와 미래 시장 대응 전략의 성격이 강하다.
현재 BW LPG는 약 50척 규모의 VLGC를 운용하고 있다. 회사 측은 이번 발주를 선대 현대화 프로그램의 일환이라고 설명했지만, 업계에서는 향후 LPG 물동량 증가에 대비한 선제적 투자라는 분석도 나온다.
실제로 글로벌 해운사들이 동시에 대규모 발주에 나서는 경우는 해당 시장의 중장기 전망이 밝을 때 나타나는 대표적인 현상으로 꼽힌다.
미국산 LPG가 바꾼 시장 구조
최근 VLGC 시장이 주목받는 가장 큰 이유는 글로벌 LPG 물류 흐름이 빠르게 변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과거 아시아 국가들은 중동산 LPG 의존도가 높았다. 그러나 지정학적 불확실성이 커지면서 공급망이 흔들리기 시작했고, 미국산 LPG가 이를 대체하는 핵심 공급원으로 떠오르고 있다.
특히 중동 지역 긴장과 이란산 LPG 수출 차질 우려가 지속되면서 한국·중국·일본 등 주요 수입국들은 미국 걸프만 지역에서 출발하는 화물 확보에 적극 나서고 있다.
문제는 운송 거리다.
중동에서 아시아까지의 항로보다 미국 걸프만에서 아시아까지의 거리는 훨씬 길다. 같은 물량을 운송하더라도 선박이 더 오랜 기간 항해해야 하기 때문에 시장에서는 자연스럽게 더 많은 선박이 필요하게 된다.
이른바 ‘톤마일(Ton-Mile) 수요 증가’ 현상이다.
해운업계에서는 단순 화물량 증가보다 톤마일 증가가 운임 상승에 훨씬 큰 영향을 미치는 요인으로 평가한다.
파나마 운하 병목까지…운임 상승세 지속
최근 몇 년 동안 VLGC 시장의 또 다른 변수는 파나마 운하다.
미국산 LPG 상당수는 파나마 운하를 통과해 아시아로 향한다. 하지만 가뭄과 통항 제한, 선박 적체 현상이 반복되면서 운송 효율성이 떨어지고 있다.
결국 선박들은 대기 시간을 감수하거나 우회 항로를 선택해야 한다.
이는 선박 회전율 감소로 이어지고 시장 전체의 공급 여력을 줄이는 효과를 낸다.
해운 시장에서는 공급이 줄어드는 상황에서 물동량이 유지되거나 증가하면 운임이 상승하는 구조가 만들어진다.
실제로 최근 VLGC 운임은 과거 침체기와 비교해 상당히 높은 수준을 유지하고 있으며, 선주사들의 수익성도 크게 개선된 상태다.
친환경 선박 교체 수요도 본격화
이번 수주가 더욱 주목받는 이유는 단순한 경기 사이클 때문만이 아니다.
국제해사기구(IMO)의 환경 규제가 강화되면서 글로벌 선주사들은 기존 선박을 친환경 선박으로 교체해야 하는 압박을 받고 있다.
HD현대중공업이 수주한 선박들은 모두 이중연료 추진 시스템을 적용한 최신 선박들이다.
이중연료 선박은 LPG와 기존 연료를 함께 사용할 수 있어 탄소 배출을 줄일 수 있으며 향후 환경 규제 대응 측면에서도 경쟁력이 높다.
결국 선주 입장에서는 단순히 오래된 선박을 바꾸는 수준이 아니라 향후 20~30년을 바라보고 미래형 선대를 구축하는 과정인 셈이다.
한국 조선업계에 찾아온 새로운 기회
업계에서는 VLGC 시장이 LNG선에 이어 한국 조선업계의 또 다른 성장 축이 될 가능성에 주목하고 있다.
특히 HD현대중공업은 최근 고부가가치 선박 중심의 수주 전략을 강화하면서 수익성을 크게 개선하고 있다. VLGC는 LNG선만큼은 아니지만 기술 장벽이 높고 부가가치가 큰 선종으로 분류된다.
여기에 글로벌 친환경 선박 전환 수요와 미국발 LPG 수출 확대가 동시에 진행될 경우 향후 수년간 안정적인 발주 시장이 형성될 가능성도 제기된다.
물론 글로벌 경기 둔화와 에너지 가격 변동성은 여전히 변수로 남아 있다. 그러나 현재 시장 분위기만 놓고 보면 주요 선주사들이 수년 뒤 인도될 선박을 대거 주문하고 있다는 점에서 VLGC 시장에 대한 기대감은 상당히 높아진 모습이다.
결국 최근 이어지는 HD현대중공업의 수주 행진은 단순한 개별 계약 이상의 의미를 가진다. 글로벌 에너지 공급망 재편과 친환경 선박 전환이라는 두 개의 거대한 흐름이 맞물리면서 VLGC 시장이 새로운 슈퍼사이클 초입에 들어서고 있다는 신호로 해석될 수 있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