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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정위, 쿠팡·컬리·무신사까지 들여다본다…유통업계 ‘거래 의존도’ 첫 전수조사

특정 플랫폼 의존도 얼마나 되나…공정위, 유통시장 구조 진단 나서

공정거래위원회가 올해 처음으로 유통업계의 거래 집중도와 거래 의존도 실태를 본격 조사한다. 단순히 불공정 거래 사례를 적발하는 수준을 넘어 납품업체들이 특정 유통사나 플랫폼에 얼마나 의존하고 있는지까지 파악하겠다는 것이다.

특히 이번 조사에는 쿠팡, 컬리, 무신사, SSG닷컴, 카카오 선물하기 등 국내 주요 온라인 플랫폼이 포함되면서 유통업계 전반의 거래 구조를 들여다보는 대규모 진단 작업이 될 것으로 보인다.

공정위는 8일 ‘2026년 유통·대리점 분야 서면실태조사’를 실시한다고 밝혔다. 조사 대상은 유통 분야 납품업체와 매장 임차인 7600곳, 대리점 분야 5만 곳에 달한다. 규모만 놓고 보면 국내 유통 생태계 전반을 사실상 전수 점검하는 수준이라는 평가가 나온다.

단순 갑질 조사 아니다…‘거래 집중도’가 핵심

이번 조사에서 가장 눈길을 끄는 부분은 거래집중도와 거래의존도 항목이 처음 포함됐다는 점이다.

그동안 공정위는 납품단가 후려치기, 계약서 미작성, 판촉비 전가 등 전통적인 불공정 거래 여부를 중심으로 조사해왔다. 하지만 최근 유통시장의 권력이 오프라인 대형마트에서 온라인 플랫폼으로 이동하면서 시장 지배력의 형태도 달라지고 있다는 지적이 꾸준히 제기돼 왔다.

예를 들어 한 중소기업이 특정 플랫폼에서 전체 매출의 절반 이상을 올리고 있다면 계약상 문제가 없더라도 협상력 측면에서는 상당한 종속 관계에 놓일 수 있다.

공정위가 이번에 조사하려는 부분도 바로 이런 구조다.

조사 항목에는 거래 중인 유통업체 수, 전체 매출 중 상위 거래처 비중, 거래선 다변화 수준 등이 포함된다. 사실상 특정 플랫폼 또는 유통사가 시장 내에서 얼마나 강한 영향력을 행사하고 있는지 파악하겠다는 의미다.

쿠팡 중심으로 재편된 유통시장

이번 조사가 주목받는 배경에는 국내 유통시장의 급격한 온라인 전환이 있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대형마트와 백화점이 유통시장의 중심이었다면 현재는 쿠팡을 비롯한 온라인 플랫폼이 시장의 주도권을 가져가고 있다.

통계청과 업계 자료를 보면 국내 온라인쇼핑 거래액은 매년 사상 최대 기록을 경신하고 있다. 소비자들은 모바일을 통해 상품을 구매하고, 판매자들은 플랫폼 입점을 통해 고객을 확보하는 구조가 일상이 됐다.

문제는 시장이 성장할수록 일부 대형 플랫폼에 거래가 집중되는 현상도 함께 나타난다는 점이다.

실제 업계에서는 특정 플랫폼이 매출의 상당 부분을 차지하는 판매자들이 적지 않은 것으로 알려져 있다. 플랫폼 정책 변경이나 수수료 인상, 노출 알고리즘 변화가 곧바로 판매자 실적에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우려도 꾸준히 제기돼 왔다.

공정위가 거래 의존도 조사에 나선 이유 역시 이러한 구조적 위험을 파악하기 위한 것으로 해석된다.

새로운 형태의 불공정 거래도 조사

이번 조사에서는 온라인 플랫폼 특유의 불공정 거래행위도 별도로 점검된다.

기존 유통업계의 불공정 거래는 납품대금 지급 지연이나 판매촉진비 강요 등이 대표적이었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에서는 문제가 훨씬 복잡하다.

검색 노출 순위 변경, 광고 상품 강매 논란, 리뷰 정책 운영, 알고리즘 우대 의혹, 판매 데이터 활용 문제 등 기존 법체계에서 명확하게 규정하기 어려운 영역이 늘어나고 있기 때문이다.

공정위는 온라인 유통업체와 거래하는 납품업체들이 경험한 새로운 유형의 불공정 거래 사례를 집중적으로 수집할 계획이다.

업계에서는 이번 조사가 향후 플랫폼 규제 정책의 기초 자료로 활용될 가능성도 높게 보고 있다.

대리점 5만 곳도 조사…협상력 격차 분석

대리점 분야 조사도 규모가 상당하다.

공정위는 22개 업종, 521개 공급업체와 거래하는 전국 대리점 5만 곳을 대상으로 거래 실태를 조사한다.

대리점 업계 역시 본사와 대리점 간 협상력 차이가 지속적으로 문제로 제기돼 왔다. 판매 목표 강요, 계약 갱신 문제, 판촉비 부담 등이 대표적인 사례다.

이번 조사에서는 영업이익률까지 새롭게 파악한다. 단순히 거래 규모가 아니라 실제 수익 구조까지 분석하겠다는 의미다.

이를 통해 공정위는 공급업체와 대리점 간 수익 배분 구조가 적절한지, 특정 업종에서 과도한 부담이 발생하고 있는지 등을 종합적으로 분석할 예정이다.

플랫폼 규제 논의의 새로운 전환점 될까

이번 조사는 단순한 실태 파악을 넘어 국내 플랫폼 시장 규제 방향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칠 전망이다.

최근 세계 각국은 구글, 아마존, 애플, 메타 등 거대 플랫폼의 시장 지배력 문제를 적극적으로 들여다보고 있다. 한국 역시 온라인 플랫폼 공정화 논의가 꾸준히 이어지고 있지만 이해관계가 복잡해 제도화 속도는 다소 더딘 상황이다.

이런 가운데 공정위가 거래 의존도와 거래 집중도라는 정량적 데이터를 확보하게 되면 향후 정책 논의의 중요한 근거 자료가 될 수 있다.

특히 쿠팡·컬리·무신사 등 성장세가 빠른 플랫폼들의 시장 영향력이 수치로 드러날 경우 유통업계의 경쟁 환경과 거래 구조를 둘러싼 논의도 한층 본격화될 것으로 예상된다.

결국 이번 조사의 핵심은 단순히 불공정 거래를 적발하는 데 있지 않다. 온라인 플랫폼 중심으로 재편된 국내 유통시장에서 누가 얼마나 큰 영향력을 갖고 있으며, 그 과정에서 중소 판매자와 납품업체들이 어느 정도의 협상력을 확보하고 있는지를 확인하는 데 있다. 향후 플랫폼 규제와 유통정책 방향을 가늠할 중요한 분기점이 될 수 있다는 점에서 업계의 관심이 집중되고 있다.